1996. 11. 23 저작권심의위원회 96 연구 세미나 발표 원고(백욱인, 채명기) 검토 의견


멀티미디어와 지적재산권


김  현


  1. 디지털 혁명과 멀티미디어(지적재산권) - 백욱인


  ‘디지털 혁명’이라는 주제로 논의되어 온 여러가지 이론과 개념을 매우 명료하게 정리하여 보여줌으로써, 이 시대에 멀티미디어의 지적재산권을 둘러싼 환경이 어떠하다는 것을 잘 드러낸 의미 있는 글이다.

  ‘지적재산권’의 문제를 토론하는 자리에서 왜 이러한 내용을 먼저 거론해야 하는가? 뉴미디어를 단지 하나의 ‘새로운 매체’로 보는 한, 그에 대한 ‘지적재산권’의 문제는 해결은 커녕 논의의 실마리조차 찾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발표자의 글에서 언급되었듯이, 인터넷이라고 하는 보편적인 네트워크는 단지 정보 이용자들의 의사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 문화 경제 전반에 걸쳐 과거의 체제를 더이상 유효하지 않게 만드는 거대한 도전으로 등장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사회를 이끌어 가는 오피니언 리더의 대부분이 아직도 이러한 변화 추세에 너무도 무감각하다는 점이다. 그들은 어느 시대이건 ‘신기술’과 ‘신매체’가 있었다고 생각하고, 그것은 굳이 그들 자신이 알려고 들지 않아도 되며, 젊은 세대들에게 맡겨 놓을 수밖에 없는 것으로 간단히 치부해 버리고 만다. 그러나 ‘인터넷’의 영향 가운데 중요한 것은 ‘기술’이나 ‘매체’가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문화적 가치관을 형성하였고, 그것이 이미 정치적인 힘을 얻기 시작하였으며, 우리가 가져온 전통적인 ‘소유’의 개념을 근저에서부터 뒤흔들어 놓는 힘을 발휘하기 시작하였음을 인식해야 한다.

  발표자는 인터넷의 철학과 문화가 미국의 자유주의적 전통에 입각해 있음을 강조하였다. 평자가 부연한다면, 이 ‘사이버 데모크라시’의 이념 속에는 현실 세계에서는 잊혀진 듯 했던 ‘아나키즘’이나 ‘뉴 레프트’ 이념도 희미하지만은 않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고 보여진다.  전통적인 현실 세계의 가치관과는 다른 이념을 지향하는 변화에 직면해 있으면서도 문제의 해결 방안을 기존 관념의 토대 위에서 찾고자 한다면 실효성 있는 해답이 나올 수 없다. ‘가진 자의 권리’ 자체가 부인되거나 새롭게 정의되기를 요구하는 마당에 그 권리를 과거의 소유권 개념으로 법제화하려는 시도는 효용성을 갖기 어렵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뉴미디어를 둘러싼 갈등은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네티즌들과 정치적 문화적 통제의 필요성을 고수하는 현실 세계의 오피니언 리더들 사이에서도 야기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새롭게 열리는 이 가상 세계에서 부(富)를 얻고자 하는 상업주의가 거대한 힘을 발휘하며 문제의 핵으로 등장할 것이 자명하다.  발표자가 지적하였듯이 ‘보편적 정보 접근의 이상이 상업화와 결합될 수밖에 없는’ 상황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운 것이다. 여기에서 첨예한 갈등이 빚어지리라는 것은 더욱 자명하다. 오늘날 사이버 스페이스가 이렇듯 영향력 있는 세계를 형성한 것은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보편적 정보 접근의 이상’에 토대를 둔 것인데, 이제 과거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막대한 부(富)의 독점과 불균형이 이 변화의 불가피한 귀결이라고 한다면, 그 변화의 방향에 대한 갖가지 안티테제들이 출현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멀티미디어 시대에 저작권에 관한 법제화의 책임을 진 사람들에게 주어질 과제는 이른바 ‘카피라이트’와 ‘카피레프트’의 갈등을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라는 쪽으로 의견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발표자는 이 중요한 사실을 많은 예시를 들면서 충분히 설득력 있게 설명하였다. 그러나 그와 같은 역할이 구체적으로 무엇에서부터 출발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의견을 제시하지 못하였다. 물론 이것은 발표자에게 주어진 연구 과제가 아니었을 것이며, 또 쉽사리 답안을 제시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닐 것이다. 아마도 지금은 이 변화를 애써 외면하고 있는 정책 당국자들에게 문제의 실상을 계몽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이 문제에 조그마한 이해라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해야 할 당면 과제인지도 모른다. 다만 여기에 평자의 의견을 덧붙인다면, 멀티미디어 시대의 ‘카피라이트’는 결코 과거처럼 ‘창조적인 개인의 저작물’에 대한 것이 아니라 아니라 거대한 ‘상업주의의 생산물’에 대한 것으로 그 개념을 바꾸어 갈 것이며, 그 상업주의에 쉽게 굴복하려 하지 않는 ‘정보 이용자’들이 그들의 ‘카피레프트’를 옹호하고 확산시키는 데 ‘기술적인 도전’은 물론 ‘사이버 데모크라시’를 표방하는 이념 운동과 사회 연대, 공유의 철학을 지향하는 그들만의 ‘사이버 스페이스 창조’ 등 갖가지 활동을 펼칠 것이라는 점이다.  이 양자가 표면적으로 서로 갈등 관계에 있는 것처럼 보여도 실은 공생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는 아이러니도 충분히 예견된다.  카피라이트가 확립되지 않으면 네트워크에 대한 투자가 감소되어 사이버 스페이스 자체가 위축될 것이며, 그러면 카피레프트의 존재 기반도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아이러니 속에서 혼란과 무질서보다는 발전과 타협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방안으로 ‘카피라이트’에 대한 법제적 노력이 기울여져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적어도 멀티미디어 시대의 ‘카피라이트’는  ‘인세 지급’이나 ‘불법 복제 방지’ 수준과는 다른 보다 개방적이고 적극적인 새로운 사고로 그 개념부터 바뀌여야 함을 인식하는 일일 것이다.


  2. 현행 저작권법과 멀티미디어 제작물 - 채명기


  멀티미디어 제작물에 대한 저작권의 문제를 다루는 것은 마치 새로운 정보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과 유사한 어려움이 있는 듯하다. 그것은 ‘현실성’과 ‘장래성’ 사이의 갈등이다. 만일 우리가 손대려고 하는 대상이 일정 기간 동안 변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면 이 양자는 특별히 어떤 갈등을 야기시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금년과 내년, 이달과 내달 사이에 기술이 변하고 환경이 바뀌어 오늘 유효했던 것이 그때 가서는 더이상 쓰이지 않거나 그 의미가 확연히 달라지게 된다면, 오늘 이 시점에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 돼 버리고 만다. 지금부터 만들기 시작하는 것이 몇 년 후부터 쓰이기를 전제한다면, 미래지향적인 것들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수집하여 장기적인 개발 계획을 수립하는 궤도를 밟는다. 반면, 당장 2, 3 개월 후부터 쓰일 것을 만들어야 할 상황에서는 현재의 기술, 현재의 환경을 충실히 반영할 수밖에 없다. 첨단 정보 시스템을 후자의 방식으로 만드는 경우 거기에는 한시적인 생명 주기(life cycle)가 주어질 수밖에 없다. 그것의 생명력을 늘이기 위해서는 계속 뜯어고치거나 어느 시점에 가서 전혀 새로운 것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

  멀티미디어 제작물이 쏟아지고 있는 요즈음 그것에 적용할 수 있는 저작권법을 정립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미래를 위한 ‘장기 연구 프로젝트’에 머물 수 없는 것임은 자명하다. 현실적으로 쓰일 수 있는 제도를 지금 당장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한 관점에 서게 되면, 우리는 현재 통용되고 있는 제도와 관습, 그리고 요즈음 수준의 가치관에 토대를 둔 제도를 만드는 것 이외에 대안을 얻기 쉽지 않다. 현행 저작권법에서 멀티미디어 제작물에 대처하는 방안을 찾는 것은 그러한 이유에서 불가피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발표자의 연구는 이 점에서 유용하며, ‘현실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평자는 발표자의 이와 같은 견해가 조속히 우리나라의 멀티미디어 저작물의 저작권에 대한 법제적인 보완으로 이어져 이에 관련한 시급한 불들을 꺼 주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우리는 앞으로 멀티미디어를 둘러싼 저작권 문제가 현행 저작권법의 범주에 머물지만은 않게 될 것이며, 그러한 문제는 매우 가까운 시일 내에 일어나리라는 사실을 예견하고 있다. 당장 쓰이기 위한 보완적 입법뿐 아니라 장래의 멀티미디어 산업의 향방을 고려한 저작권법 정립의 노력이 병행하여 수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발표자는 ‘멀티미디어 제작물’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으며, 그것은 모노미디어 ‘저작물’의 이차적 사용에 의해 ‘제작’된다고 하는 관점에서 저작권의 문제를 다루었다. 그러한 관점에서는 당연히 멀티미디어의 저작물성이 ‘편집저작물성’에 속하는 것으로 판단되게 되며, 저작권의 문제도 ‘멀티미디어 제작물’ 자체의 저작권보다는 그 제작물에 흡입된 오리지널한 모노미디어 ‘저작물’의 저작권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기존의 창작물을 이용한 멀티미디어의 제작이 현재까지 가장 일반적인 멀티미디어 제작 형태였다는 점에서 발표자의 견해는 타당성을 갖는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멀티미디어의 기반이 취약했던 현재까지의 상황이며 지금부터 전개될 멀티미디어의 제작 방향은 그와 다를 수 있다는 점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디지털화된 갖가지 저작물을 관습과 권위에 의한 갖가지 장벽의 제약을 넘어 자유롭게 유통시킬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됨으로서 상품 가치를 갖는 저작물도 종래의 모노미디어적인 저작물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멀티미디어 저작물로 만들어질 가능성이 더욱 증대되었다. 예컨대 자본을 가진 멀티미디어 제작사가 기획의 주도권을 행사하며 작가, 화가, 음악가를 제작 스텝으로 고용하여 독창적인 멀티미디어 제품을 제작하고, 이를 네트워크와 같은 뉴미디어를 통하여 유통시키는 것이 멀티미디어 제작 및 유통의 일반적인 모습이 될 것인데, 이러한 멀티미디어의 저작권은 어떠한 범주에 놓일 수 있을 것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저작권 관련 법이 실제로 쓰이게 될 저작권 관련 분쟁도 앞으로는 모노미디어 저작자와 멀티미디어 제작자 사이에서보다, 멀티미디어 제작자 사이에서 ‘독창성’, ‘표현성’의 문제를 가지고 빈발할 것이 예상되는데, 이 점에 있어서도 저작권으로 인정되는 창작성의 범위를 어떻게 보느냐가 문제될 것이다.  또 한 가지 멀티미디어의 저작권은 궁극적으로 ‘정보 이용자’들에 의해 존중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지나친 상업주의 및 디지털 메이저들의 독점 추구로 흐르는 것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자유주의적 네티즌들이 개인적인 ‘탈법’의 차원을 넘어 멀티미디어 저작권의 개념 자체를 부인하거나 새로운 개념 정립을 요구하는 운동도 일어나고 있는데, 이러한 사회 현상을 포용하는 문제도 저작권법 관련 제도의 정립과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